학교를 그만둔지 얼마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출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몸은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아직 학교 짐도 풀지 않았습니다. 짐을 살펴보다 상자 한구석에 있는 플라스틱 알토 리코더와 오카리나를 발견했습니다. 참! 오랜세월같이 했는데...

한번 불어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알토리코더를 조립했습니다. 그리고 옛날에 가르치기 위하여 편곡한 존덴버의 '애니송' 수업자료를 열었습니다. 그리고 연주를 해보았습니다. 어이가 없게 운지가 되지 않아 연주가 많이 틀립니다. 옛날에는.. 사실 얼마전만해도 파헬벨의 캐논을 아이들 앞에서 시범연주하면서 잔소리까지 했는데 얼나마 지났다고 이 쉬운 곡을.....

몇번 연습을 하니 제법 돌아가는 군요. 생각난차에 녹음을 해보았습니다. 이 리코더는 텅잉이 참 어렵습니다. 잡소리라 많이 납니다. 쉬운 악기 같지만 잘 연주하려하면 너무 어렵게 느껴집니다. 텅잉이 세면 바로 잡소리가 납니다.

그런데 연주를 하는 도중에 갑자기 나도 모르게 코끝이 찡합니다. 학생들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요? 과거 교육현장에 서 있는 나에 대한 그리움 때문일까요?

그렇다고 그만둔 것을 후회하는 것은 아닙니다. 보고싶지 않은 사람들을 보지 않는 것만도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다소 빠르긴 하지만 이제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하며 사는 나이가 된 것같습니다.


음악교육은 무엇 때문에 할까요?

학생들의 감성때문에,

학생들의 창의력을 위하여,

학생들의 사회성 발달을 위하여,

기타 등등


기타 이유가 많습니다. 음악교육은 참 중요한 교육입니다. 그 어떤 과목도 이 과목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오죽하면 그리스 시대에 음악교육을 그렇게 중시했겠습니까? 물론 그 시대의 '음악'이라는 개념이 지금하고는 틀리지만 말입니다. 플라톤은 음악에 대한 에토스 론을 말하기도 했지요.

작년에 제가 선생님들께 이야기했습니다. Blended Learning 시대가 올 것이라고

정부에서도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블렌디드 러닝이라는 말을 하더군요. 물론 선생님들께는 '거꾸로 교실'이라는 말로 더욱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블렌디드 러닝은 존 버그만(?) 등이 했던 개인적으로 교육자료를 만드는 거꾸로 교실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몇 년전에 외국 사이트를 통하여 블렌디드 러닝 영상을 보았는데 정말 무섭더군요.

주입식 교육은 절대 인공지능화된 교과서를 따라잡을수 없습니다. 반박하는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만약 교과서가 게임처럼 상호작용(Interactive)이 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나 학교와 교사는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학교는 학생들에게 타인의 존재를 알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성을 형성할 수 있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그래서 학교는 절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사의 존재 가치는 무엇이겠습니까?

장자의 '환공과 윤편' 이야기를 아십니까?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환공이 마루 위에서 책을 읽고 있고, 윤편이 마루 아래에서 수레바퀴를 깎고 있었습니다. 

윤편이 환공에게 공께서이 읽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성인의 말씀이네.” (聖人之言也.)
윤편이 다시 물었습니다. “성인이 살아 있습니까?”
환공이 대답했다. “이미 죽었네.”
윤편이 말했다. “그렇다면 공께서 읽고 있는 것은 옛사람들의 찌꺼기군요.” (然則君之所讀者, 古人之糟魄已夫.)
환공이 말했다. “과인이 책을 읽는데 수레바퀴 기술자 따위가 어찌 왈가왈부하는가? 나를 설득하면 살려두겠지만 설득하지 못하면 죽게 되리라.” 

윤편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제가 평소에 늘 하는 일로 수레바퀴를 깎을 때 많이 깎으면 헐렁거려서 꽉 맞물리지 않고, 덜 깎으면 빡빡해서 들어가지 않습니다. 더 깎지도 않고 덜 깎지도 않게 하는 것은 손 감각으로 터득해 마음에 흡족할 뿐이어서 입으로 말할 수 없으니 바로 그 사이에 비결(기술)이 존재합니다. 저도 이를 제 자식에게 일깨워줄 수 없고, 제 자식도 저에게 그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이 때문에 나이가 70이 됐지만  지금도 수레바퀴를 깎고 있습니다. 옛사람은 전해줄 수 없는 것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군주께서 읽고 있는 것도 옛사람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교사는 바로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 값어치가 있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교사의 살아있는 존재를 보고 모방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교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옛날이 좋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다고 신세 한탄만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교육의 존재이유는 대학입학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학생의 행복을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이상의 이야기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 글을 읽는 교사분이 있다면 기죽지 말고 늘 배우고 익히는 그런 사람이 되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학생들은 그 모습을 매우 좋아할 것이고 그것을 배울 것입니다.


알토 리코더로 인하여 잡설이 길었습니다.